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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종이배처럼 흔들리는 한국호, 어디로 가는가?

서필언(통영고성지역발전연구소 이사장/전 행정안전부 1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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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사입력 2017-04-07


▲ 서필언     © 편집부
며칠 전 일본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 옮길 수는 없지만 골자는 이랬다.
"내가 한국을 떠나온 지 수년이 흘렀지만 한국은 참 변하지 않는 나라 같은 느낌이 든다. 거대한 배들이 오가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작은 고깃배처럼 외롭고 위태로워 보인다. 임기 중의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국민들은 촛불로 환호하는 광경이 참 낯설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먹먹하여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역시 그런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친구 말이 자꾸 귓가에서 맴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수상이 부인의 뇌물스캔들로 인해 지금은 지지율이 다소 떨어지고 있다지만 그 일이 있기 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왜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베의 우익적 행보가 전혀 맘에 들지 않는다. 그토록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주창하고, 자위대를 최고도로 무장시키는 등 우리가 원치 않는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지식인들마저 아베의 우익 정치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무한 외교 경쟁시대에 자국이익이란 명제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이익을 핑계로 일본은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 심각한 외교 분쟁으로 비화될 것처럼 보이던 말레이지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시신을 북한으로 보내고 슬그머니 비판적 입장을 철회하고 말았다. 정말 무엇이 정의인지, 정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토록 국가의 이미지 실추를 걱정하던 미국도 철저한 언더그라운드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중국은 사드라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내세워 한류를 억제하고 북한을 두둔하고 감싸 안는다.

영국은 특히 국익 앞에서는 극단적 국수주의에 가까운 나라이다. 10여년전 필자가 나랏일로 영국에서 3년동안 살면서 직접 느껴 보았다. 영국을 움직이는 당은 보수당과 노동당 두 축이다. 두 당은 이념에 앞서서 국익과 실용이란 목표에는 항상 보조를 같이 한다. 그래서 노동당이 집권 후에는 보수당보다 당의 정강이 더 보수적으로 바뀐다는 애기도 많이 듣곤 했다.

유럽연합(EU)에 적극적인 참여를 공약했던 노동당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EU 공동화폐인“유로화”사용을 거부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결국은 EU탈퇴(브렉시트)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 것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이렇듯 왜 이들 국가들은 마이 웨이를 외쳐대는가?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말레이지아 같은 나라들이 우리보다 윤리적 잣대가 부족한 나라들인가? 분명 그렇지 않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적 이익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국제정세에 비해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은 남 닭 보듯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한국이야 말로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미사일 발사, 핵무장에 혈안이 된 3대 세습을 자행하는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의 행복에는 관심도 없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도 그들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결정한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한국호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의 시선은 세계정세와는 반대로 이념의 틀 속에 갇혀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감싸 안으면 지성인이고 비판하면 낡은 사고라는 이분법에 얽매여 있는 것도 답답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탄력을 붙이면 5∼6년이면 넘어서는 1인당 소득 3만 달러의 벽 앞에 11년째 주저앉아 있다. 근면 성실은 우리 국민의 장점이다. 그런데 왜 이 벽은 높기만 할까. 그 극복하지 못할 벽은 바로 정치권을 필두로 한 심각한 이념논쟁 때문이 아닐까.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다. 이런 지구촌의 변화엔 눈을 감고 타오르는 촛불만이 국가의 미래라고 외친다면 우리나라가 풍랑 속의 종이배 신세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우리는 조금 더 냉정해져야 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토요일 저녁을 광장에서 보내기보다 지금 내가 선 현장에서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밤늦은 시각, 친구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은 소원했던 두 사람의 안부를 물은 것이지만 결코 차창을 스쳐가는 구름 같은 얘기는 아니었다. 친구와의 대화로 필자는 요 며칠 동안 심한 봄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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